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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] 조선공산당 망친 신의주 청년들
관련기사 조선공산당 망친 신의주 청년들 ‘신영웅주의’ 1925년 11월 22일 밤 신의주에서 조선공산당 청년회원들이 일본 순사와 친일파 인사들을 집단 구타했다. 이 사건으로 조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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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공산당 망친 신의주 청년들 ‘신영웅주의’
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관련자에 대한 재판 내용을 보도한 신문 지면(동아일보, 1927년 4월 3일자). [사진가 권태균] 조선공산당이 결성된 지 약 7개월 후인 1925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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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요회·북풍회 ‘아서원’서 조선공산당 결성하다
1925년 4월 전조선기자대회가 열렸던 수운회관. 이 행사는 조선공산당 창당 날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. [사진가 권태균] 1925년 4월. 일제 경찰(日警)은 정신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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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파·해외파의 대결, 목표는 코민테른 조선지부
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 결성 대회가 열렸던 중앙기독교청년회관(현 종로 YMCA). 서울청년회는 조선청년총동맹으로 사실상 전국의 거의 모든 사회운동 조직을 통합한 셈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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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] 사회주의 세력의 ‘3단계 공세’
관련기사 서울청년회 ‘3단계 공세’ 돌입, 사회운동 주도권 잡다 김사국과 서울청년회 등 사회주의 세력은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확 퇴진운동, 김윤식 사회장 반대, 사기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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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청년회 ‘3단계 공세’ 돌입, 사회운동 주도권 잡다
서울 견지동 청년회관 터. 현재는 서울중앙교회가 들어서 있다. 서울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은 1920년대 초반 민족개량주의 세력을 공격해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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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] 서울청년회 주도권 3자 다툼
관련기사 이득년·장덕수·김사국, 청년·사회운동 주도권 다툼 일제가 문화통치를 표방하자 전국의 청년회는 446개로 급증했다. 민족주의 색체가 강한 사회혁명당 그룹 장덕수의 발의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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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득년·장덕수·김사국, 청년·사회운동 주도권 다툼
김사국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은 조선청년회연합회 등에서 민족주의 세력을 축출하고 ‘전(全)조선청년당대회’를 개최해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. [사진 독립기념관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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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해서 귀국하던 ‘조선 사회주의 삼총사’ 일제에 체포
모스크바 공산청년대학(국제레닌학교)에서 공부한 멤버들. 앞줄 왼쪽 둘째부터 김태연(김단야), 박헌영, 양명(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)이고 뒷줄 오른쪽 셋째가 박헌영의 첫 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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흑도회 결성, ‘무정부’ 선언한 일본 유학파
코민테른의 창립 초기에 각국 공산당은 러시아 공산당과 동등한 관계였지만 스탈린 시대에 상하관계로 바뀌었다. 사진은 레닌이 코민테른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이다. [사진가 권태균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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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난 볼셰비키” … 총살된 조선 여인, 김알렉산드라
"중앙선데이,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" 하바롭스크시 칼리니나가에 있는 한인사회당 창당 장소. 1918년 5월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이 결성된 곳이다. [사진 국외항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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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난 볼셰비키” … 총살된 조선 여인, 김알렉산드라
하바롭스크시 칼리니나가에 있는 한인사회당 창당 장소. 1918년 5월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이 결성된 곳이다. [사진 국외항일운동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] 새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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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부 통합은 멀고 만주사변은 가까웠다
북만주 산시(山市)에 있는 김좌진의 옛집. 김좌진은 신민부 군정파로서 삼부통합운동에 참가했다. [사진가 권태균] 만주의 삼부(三府)⑨일제 탄압과 내부 분열만주 이주 한인들, 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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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민부, 장작림 잡으려 장개석과 손잡다
백범영-독립군 도강작전, 143×75㎝, 화선지에 수묵담채, 2012 만주의 삼부(三府)⑧북만주의 통합 바람봉오동·청산리 승첩 후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러시아령으로 들어갔다가 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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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요일 아침의 휴식을 빼앗은 ‘나쁜’ 연재물들
중앙SUNDAY는 참 나쁜 신문입니다.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죠. 마약·대마초 수준은 아니겠지만 술·담배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고 합니다. 일요일 아침 편안하게 쉬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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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얼빈 이남 한인에겐 ‘정의부’가 정부였다
정의부 중앙행정위원회가 있던 유하현 삼원보. 망국 직후부터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. 일제와 장작림 군벌정권의 탄압으로 정의부는 근거지를 계속 옮겨야 했다. [사진가 권태균 제공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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총독 저격, 고마령 참변 … 파란만장 ‘참의부’
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대원들. 192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. 참의부는 사이토 총독을 저격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주도했다. [사진가 권태균 제공] 만주의 삼부(三府)⑥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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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] 통의부로 뭉쳤다, 그러나 청사진이 달랐다
압록강 국경경비병들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펼치고 있다. 일제는 압록강을 오가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검색했으나 독립군의 도강작전을 막지는 못했다. [사진가 권태균 제공] 러시아령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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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의 패전 분풀이 ‘용정 장암동 학살’
청산리 전투 당시 일본군이 부상병들을 후송하며 이동하고 있다. 독립군은 전열 재정비를 위해 러시아로 갔다가 자유시 사변을 겪게 된다. [사진가 권태균 제공] 봉오동·청산리 대첩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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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무적 황군’ 신화 깬 김좌진·홍범도 연합부대
"중앙선데이,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" 1910년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전쟁론의 씨가 뿌려졌다. 1919년부터 독립군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진공했다. 일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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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무적 황군’ 신화 깬 김좌진·홍범도 연합부대
[백범영-청산리전투, 59×40㎝, 화선지에 수묵담채, 2012] 만주의 삼부(三府)③ 봉오동과 청산리1920년 6월 4일 새벽 5시, 화룡현(和龍縣) 삼둔자(三屯子)를 출발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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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범도 대한독립군, 망국 10년 만에 국내 진공작전 포문
만주 각지에서 통합 독립군이 결성돼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공격을 가하자 일제는 대규모 토벌을 계획했다. 사진은 중국 길림성 집안(集安) 쪽에서 바라본 압록강의 모습. [사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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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주 지역 한인 50만 명, 독립운동의 둥지가 되다
조선의 집단 망명자들이 거주했던 중국의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 마을. 뒤에 보이는 산이 1911년 4월 민단자치조직인 경학사를 조직했던 대고산이다. [사진가 권태균 제공] 만주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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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임정 두 기둥’ 이승만·이동휘, 돈 문제로 내분 촉발
1920년 12월 28일 상해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환영회가 열리고 있다. 이승만(가운데)의 곁에 카이젤 수염을 기른 국무총리 이동휘(왼쪽)와 내무부장 안창호(오른쪽)가 서 있